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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평화센터 주요사업 6.15 남북정상회담 기념식(6.15 17주년 기념식)


환영사
   
     

1. 들어가며

어느덧 최초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지 20년이 다가오고 있고,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도 17년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촛불 혁명에 힘입어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햇볕정책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켜 ‘진짜안보’를 구현해야 할 역사적인 책무 앞에 서게 됐다.

김대중 정부의 업적과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적 과제에 대해서는 이미 숱한 논의들이 있어왔다. 이에 필자는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 안보 문제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세 가지 숙제를 현재적 관점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제2의 페리 프로세스의 ‘절박성’이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 첫해인 1998년 8월 북한의 금창리 핵 의혹 사건과 광명성 1호(대포동 1호) 발사로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었다. 당시 미국 내에선 제네바 합의 파기론과 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미사일방어체제(MD) 논의가 극성을 부렸다. 심지어 예방적 대북 선제공격론도 불거졌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대북정책 재검토에 착수한 클린턴 행정부를 집중적으로 설득해 한국 주도의 ‘페리 프로세스’를 탄생시켰다. 가히 한미관계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북정책 공조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페리 프로세스는 종착역을 앞에 두고 탈선하고 말았다. 미국의 정권교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미완의 과제를 달성해야 할 몫은 우리에게 남겨졌다. 때마침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놓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한국에선 촛불혁명 덕분에 정권교체도 이뤄졌다. 북핵 문제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함께 ‘제2의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 DJ 주도의 페리 프로세스가 오늘날 전하고 있는 교훈은 단순 명쾌하다. ‘복잡해 보이는 한반도 문제를 단순화하라.’ 스티브 잡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잡함의 궁극은 단순함”에 있으며, 복잡해 보이는 한반도 문제의 단순함은 바로 ‘냉전 구조’에 있다. 냉전 구조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DJ가 남긴 첫 번째 숙제가 아닐까 한다.

둘째는 ABM 조약 파동의 ‘교훈’이다. 2001년 2월 한러 정상회담에선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이를 보존·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러자 크렘린에선 환호가, 백악관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파동의 경위는 김대중 정부가 ABM 조약의 민감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기존의 국제적 관례에 따라 이 조항에 동의했다는 데에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까지만 하더라도 ABM 조약을 유지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MD 구축을 위해 이 조약의 파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는 점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급기야 부시 행정부는 워싱턴 방문을 앞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MD를 지지하고 한국도 참여하겠다고 선언하고 오라는 취지의 요구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DJ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역사상 가장 실패한 한미정상회담’이라는 일각의 비난까지 받았다.

그렇다면 ABM 파동이 오늘날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세 가지만 짚고 싶다. 하나는 한반도 문제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핵 강대국들의 전략적 관계 및 균형에 핵심 변수가 되어왔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사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처 방향에도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또 하나는 한미정상회담 ‘성공’의 판단 기준이다. 만약 DJ가 부시의 요구를 수용했다면, 한미정상회담 자체는 성공적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총체적인 국익의 손실이었을 것이다. 끝으로 DJ가 부시의 요구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한미관계는 거의 ‘이상 무’였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드 배치 요구를 거부하거나 재검토하자고 하면 한미동맹이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우리 안의 ‘공미증(恐美症)’을 성찰해봐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교훈을 바탕으로 사드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는 게 DJ가 남긴 두 번째 숙제가 아닐까 한다.

셋째는 군비통제와 군축의 ‘실종’이다. 김대중 정부의 안보 전략에는 군비통제 및 군축 정책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 이러한 정책은 사실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정부 정책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문재인 캠프는 임기 내에 국방비를 GDP 대비 3%로 올리겠다는 공약도 제시한 바 있다.

‘북핵 위협이 고도화되는데 무슨 군축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대의 군사적 밀집 지역이자 제2의 핵시대로 접어든 한반도에서 군축 전략 없이 과연 비핵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당장 한국이 군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적어도 대규모의 군비증강이 북핵 문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심사숙고하면서 군축 연구와 정책 마련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는 취지이다. 날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군비 제한은 필요하다. 군비통제와 군축을 통한 평화·복지·자주국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DJ가 남긴 세 번째 숙제가 아닐까 한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 정책에 대한 제언을 하고자 작성된 본 발표문은 여러 가지 안보 현안 및 정책을 나열식으로 다루기보다는 북핵과 사드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크게 네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문재인 정부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들 두 가지 문제가 최대 현안이자 당면 과제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들 사안의 전개 양상은 다른 안보 과제뿐만 아니라 국가 전략과 국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초기 정책과 접근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끝으로 문재인 정부가 혹시 첫 단추를 잘못 꿸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바람직한 문제 해결 경로와 방식을 공론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2. 문재인 정부의 안보 정책과 이에 대한 비판적 검토

문재인 대통령의 안보관은 ‘종합 안보’, 혹은 ‘포괄 안보’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외교관 출신의 정의용 전 제네바 대사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하면서 “과거 정부에서는 안보를 국방의 틀에서만 협소하게 바라본 측면이 있었다”며, “오늘날 안보의 개념이 보다 더 확장적이고 종합적이어야 한다”고 밝힌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안보에서 외교의 역할 확대뿐만 아니라 경제와 민생까지 감안할 수 있어야 “진짜안보”가 구현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대화에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는 한국의 현실에서 ‘국방-외교-남북관계’가 선순환을 형성할 때, 제대로 된 안보를 구현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안보 문제의 우선적인 해결 의지도 천명했다. “안보 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다”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다졌다. 그러면서 사드 문제 해결, 북핵문제 해결 토대 마련, 자주 국방력 강화, 동북아 평화구조 정착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정책 과제로 명시했다. 이를 위해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과 더불어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며, 통일외교국방 현안을 대통령의 핵심 아젠다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적페 청산”을 역설해온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안보 적폐가 쌓여왔다며, “4가지를 뿌리 뽑겠다”고 다짐했다. “안보무능과 무책임, 방산비리, 국방의무와 병역의 불공정, 사악한 색깔론과 망국적인 종북몰이”가 바로 그것들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또한 마땅히 극복해야 할 사안들이다. 또한 “평화를 지키는 안보에 머물지 않고, 평화를 만드는 안보로 거듭나겠다”라는 목표 역시 시대 정신에 부합한다.

이러한 안보 정책 기조에 따라, 문재인 대선 캠프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4번째 항에 ‘강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제목으로 안보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유능한 안보, 강한 대한민국’, ‘비핵화와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 ‘당당한 협력외교로 국익 증진 등 3가지 목표 아래 책임·협력·평화·민주라는 4대 원칙을 제시했다. 또한 “대통령이 되면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반전(反戰) 의지도 분명히 했다.

이러한 기조와 목표, 그리고 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정책 공약도 여러 가지 제시했다. “6자 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양자·다자회담을 적극 활용해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며, “북한 핵 폐기에 따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강도 협력을 강화할 것”을 약속하면서도 “미국과는 군사동맹과 FTA를 바탕으로 외교 기축으로서 전략적 유대를 지속하겠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미국이 갖고 있는 한국군 전시 작전권은 임기 내 반환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공약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압도적인 국방력으로 북한 도발을 무력하겠다”며, “북핵 대응 핵심전력을 조기 전력화하겠다”고 다짐한 부분이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다른 정책 기조 및 목표와 상당한 긴장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공론화와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문 대통령은 장병 복무기간을 기존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하고 장병 급여도 순차적으로 인상하는 등 군 복무여건 개선도 공약했다.

이러한 공약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주간의 행보를 종합해볼 때,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정책 공약 사이의 긴장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 정책은 “한미동맹 강화”와 대규모 전력 증강에 바탕을 둔 “자주적 국방력 건설”로 압축된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북핵 고도화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 방향은 보다 상위의 정책 목표, 즉 “비핵화와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과 상당한 긴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안보 문제라는 점에서 북한을 ‘공도의 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한미동맹 강화와 “북한을 압도할 독자적 핵심전력 구축” 시도는 북핵 해결에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 또한 대규모 군비증강 계획은 “상호 군비통제를 단계적으로 실행하여 전쟁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군비통제 공약과도 충돌한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딜레마를 함축하고 있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한반도 비핵평화 체제의 진전으로 전작권 환수에 필요한 자연스러운 안보 환경의 도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오히려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지체 내지 후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럴 경우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전작권 환수” 추진시 극심한 남남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전작권 환수시 전작권을 넘겨준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군 군사력을 한국이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군사전략가들은 전작권을 한국에 넘겨주고 주한미군은 중국을 겨냥한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길 희망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한미군 사령관들이 밝혀온 것처럼 “주한미군 사령부는 전쟁 사령부가 아니라”, “주한미군의 훈련 및 준비 상태를 확고히 하는 역할을 하는 태평양 사령부의 보조 사령부”이다. 이에 따라 전작권 환수는 주한미군의 태평양 사령부의 예하 부대로서의 성격이 보다 강해지고 한반도를 넘어선 동북아 기동군으로서의 역할 확대로 이어지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곧 문재인 정부가 정책 목표로 제시한 “동북아 평화구조 정착”에 난관을 조성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문재인 정부의 안보 정책은 두 가지 핵심적인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다.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 강화와 강력한 대북 억제력이 필요하지만, 이것이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거나 한반도 및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격화시킬 가능성도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전작권 환수라는 당위적인 목표가 주한미군의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의 재편 가속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딜레마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처가 필요하다. 하나는 통일-외교-국방을 아우르면서 이들 사이의 긴장과 모순을 최소화하고 선순환을 도모할 수 있는 ‘통합된 안보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냉전 구조의 해체’, 즉 ‘평화체제 구축’이다. 평화체제 프로세스를 통해 비핵화를 도모하고 자주국방의 증진과 축소지향적인 한미동맹 재조정을 추진하며 통일 친화적인 대내외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

또 하나는 이러한 안보 전략에 부합할 수 있도록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의 역할과 라인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부처의 자율성은 평화체체 구축이라는 최상위의 통합된 안보전략에 맞게 조율되어야 하며, 대통령이 이를 직접 챙기면서 국가안보실의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3. 문재인 정부의 북핵과 사드 입장에 대한 비판적 검토

북핵이 고도화될수록 그 실효성 여부와 관계없이 사드 배치의 명분은 강하게 제기된다. 그런데 북핵을 이유로 사드가 배치·가동되면, 북핵 문제 해결 진전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진다. 오히려 북한이 사드를 비롯한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맞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북핵과 사드는 모순(矛盾)적이면서도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다.

북핵은 분명 대단히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다. 그래서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가급적 이 방정식에 차수를 추가하지 않는 것이다. 사드라는 또 하나의 고차 방정식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의 악화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드가 기어코 배치되어 가동되면,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기존의 한반도 정책에 ‘전략적 균형 유지’라는 새롭고도 낯선 목표를 추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일 대 중러 사이의 전략적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만다. 이 와중에 세력균형과 전략적 균형을 중시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의 북핵과 사드에 대한 초기 대응은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안팎의 어려운 여건과 당선 직후 숨 돌릴 틈도 없이 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해하더라도 “주도적 역할”을 위한 ‘중심 잡기’와 ‘프레임’ 설정에 미흡한 부분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북핵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조속한 안보 위기 해소를 다짐해온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주변국들에 특사를 파견하고 외교안보 책임자를 일부 임명·지명하면서 정책과 진용을 가다듬고 있다. 특히 미국과 북핵 공조를 재설계 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미 양국은 5월 16일 청와대 외교안보 T/F 팀장 정의용 전 대사(현 국가안보실장)와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회담을 갖고 네 가지 합의 사항을 내놓았다.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가 궁극적 목표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 동원 △북한과는 올바른 여건이 이루어지면 대화 가능 △과감하고 실용적인 한·미 간 공동 방안을 모색이 바로 그것들이다. 제재 모드를 유지하면서 조건부 대화 의사를 피력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후에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앞서 대북정책 재검토에 착수한 트럼프 행정부는 4월 26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상원 의원들에게 브리핑을 마치고 자신들 명의로 대북정책 합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선 북핵 문제를 “국가안보에 대한 긴급한 위협이자 외교 정책의 최우선 순위”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경제 제재 강화와 동맹·파트너들과의 외교적 조치를 추구해 “북한이 핵·탄도미사일, 그리고 핵확산 프로그램을 해체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력 사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대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한다”며,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두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과 동맹국들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4월 26일 미국의 성명과 5월 16일 한미간의 네 가지 합의 사항, 그리고 이후 한미 양국에서 나온 입장을 종합해보면, 양국의 북핵 대응은 군사적 억제와 대북 제재와 압박, 그리고 조건부 대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후 ‘압박과 대화 병행론’도 한미간에 논의되고 있지만, 이러한 접근법으로 난마처럼 얽힌 한반도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진 회의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입장과 대응이 아쉬운 까닭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직까진 정권교체와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북핵 대응 전략이 나왔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제재가 약해서 북핵 문제가 악화된 것이 아니라 협상다운 협상이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때마다 국제사회는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부과하면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결과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비약적인 증강이었다.

반면 6자회담은 2008년 12월에 결렬된 이후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회담도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해놓고 지금까지 한 번도 개최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도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점을 국내외에 천명했어야 했다. 그래서 지난 10년 가까이 북핵 대처를 지배해온 ‘대북 제재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라는 프레임을 ‘대북 협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바꾸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더 본질적인 문제도 있다. 북핵 문제는 ‘북핵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한 걸음도 진전하기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다. 북한의 1차 핵실험을 기준점으로 본다면, 한미 양국이 북핵 대처에 고심을 거듭해온 기간은 10년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 핵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를 두고 70년 가까이 고심해왔다. 이에 따라 북핵 문제는 한반도 핵문제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북한의 비핵화’나 ‘북핵 폐기’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북핵 문제 해결과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가 조화를 이루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관점을 유지·발전시킬 때 문제 해결의 진전을 도모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아직까진 이러한 역사적이고, 균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관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한미간에 한반도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가 공개적으로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북핵은 정전체제라는 비정상적인 토양에서 자라난 독버섯과 같은 존재이다. 이에 따라 북핵의 뿌리를 캐내기 위해서는 토양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것은 곧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현실에선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는 맹목이고, 비핵화 없는 평화체제는 공허하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는 물론이고 자주국방과 전시 작전권 환수, 통일 지향적인 남북관계 등 안보 목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 복지 재원 확충, 남북한 경제공동체 건설 및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진출을 통한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 등 다른 국정 목표와 관련해서도 평화체제 구축은 최적의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안보 전략과 목표의 통합적이고도 최우선 과제를 평화체제로 삼아야 한다고 필자가 제언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드 대처에도 아쉬운 대목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견지해온 사드에 관한 입장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압축된다. 사드 배치에 찬반 입장을 정하기보다는 절차적 문제와 득실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사드 문제를 절차적 문제로만 환원해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공개적으로는 그렇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의 사드 보고 누락 사건이 뜻하지 않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론적인 비판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점은 반드시 복기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5월 30일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가 이미 반입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고하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이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뉴스 속보로 국내외에 긴급 타진됐다. 그리고 5월 31일에는 이 사건을 “의도적인 보고 누락”으로 잠정 결론짓고 조사를 확대키로 했다.

보고 누락은 국방부 및 김관진 전 안보실장의 대통령에 대한 기망 행위로 해석할 수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5월 30일 “사드 배치 과정 내내 한 모든 조치가 매우 투명했다”며 반박성 입장을 내놓았다. 더 주목할 일은 다음날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면담 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더빈 원내총무는 면담 도중에 “한국 도착 즉시 사드 뉴스를 많이 들었는데, 이 점에 대한 한국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 듣고 싶다”라고 설명을 요청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사드는 북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결정한 것이며, 저는 이것이 전임 정부의 결정이지만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뒤이어 환경영향평가와 국회 논의 등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어제 사드와 관련한 나의 조치는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이며, 기존의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사드 배치를 추진하되 환경영향평가와 국회 논의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국이 양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사드 배치 추진을 전제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측컨대, 사드 배치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는 이러한 입장 표명은 “국내적 조치”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한다. 사드 보고 누락 뉴스를 접한 더빈은 이걸 사드 배치 철회나 재검토의 신호탄으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면담 직후 “우리는 어려운 예산 상황에 직면해 많은 프로그램을 삭감하고 있는데 한국이 사드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9억2천300만 달러를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더빈 의원, 더 나아가 미국 의회와 정부를 안심시키기 위해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6월 1일 방미길에 오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출국에 앞서 “어제 제가 외교부 경로를 통해서 미국 측에 이번 보고 누락 경위를 조사하게 된 배경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국내적 조치이고 한미동맹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이후 한민구 국방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과 짐 실링 미사일방어국(MDA) 국장의 청와대 예방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설명을 들은 미국 측의 반응은 “이해하고 신뢰한다”는 말로 압축된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것은 “적절한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절차가 필요하다는 한국측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으로, 그리고 “신뢰한다”는 것은 사드 배치 자체는 이행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공개적인 진상조사 발표가 사드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선택지를 좁히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이 “기존의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상황에서 추후에 미국에 사드 배치 철회는 물론이고 재검토하자고 제안하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다룬 방식은 ‘결과에 대한 사려’가 부족한 것이었다. 만약 비공개로 조사했다면, 그래서 언론 보도도 나오지 않고 더빈 의원과의 면담에서도 부각되지 않았다면, 상기한 상황은 초래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주성과 국익을 증진하기 위해서라도 한미관계의 섬세한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문재인 정부로서는 우선 시간을 벌 필요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전략’, 혹은 ‘일반’ 환경영향평가로 대체하면 1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고 이 사이에 모종의 해법을 모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 벌기’가 사드 배치를 전제로 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절차적 문제는 사드 문제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절차적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되어도 사드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거의 그대로 남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사드의 북핵 방어의 효율성과 북핵 문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 한국의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로의 편입 및 한미일 삼각동맹으로의 연결 가능성,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우려 자극 및 한중·한러관계에 미치는 영향, 중국의 사드 보복 장기화 가능성, 한반도 및 동북아의 군비경쟁과 신냉전 격화 우려 등이 포함된다. 대한민국 국익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문제들은 사드 배치의 절차적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정부 스스로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너무 강하게 갇혀 있고, 이에 따라 사드 배치 결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 동맹이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또한 6월 하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사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국익의 수단이다. 또한 비정상적으로 결정되고 추진된 사드 문제를 재협의하지 못할 정도로 한미동맹이 허약하지도 일방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기간 동안 사드 배치 결정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이러한 대선 공약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자고 미국에 제안해도, 이는 결코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결코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절차적 문제를 따져보고 바로잡는 것과 함께 사드 배치 자체도 재검토해야 한다. 사드 배치가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한-미-중 대화를 통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보자’며 미국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북핵 해결에 있어서 중국의 역할도 사드 배치를 유보할 때 극대화될 수 있다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상기한 문제 이외에도 사드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꼭 유념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전쟁 가능성에 미칠 영향이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제기된다. 하나는 미중간의 무력 충돌 발생시 사드 및 X-밴드 레이더가 한국을 미중간의 무력 충돌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는 ‘인화물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의 대북 예방적 공격론에 미칠 영향이다. 미국의 주장처럼 사드가 주한미군 방어에 효과가 있고, 더 나아가 주일미군, 괌, 하와이, 미국 본토로 연결되는 통합 MD의 일환이라면, 이것이 미국의 대북 예방적 공격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미국이 북한의 보복 공격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갖게 되면,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물론 ‘반전(反戰)’을 최고의 안보 목표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나리오일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말처럼 “정권은 유한하고 조국은 영원하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그 다음 정권이 미국의 대북 공격론에 어떤 입장을 보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여 문재인 정부의 사드에 대한 ‘현재적’ 판단은 사드 배치가 초래할 ‘중장기적인’ 문제에 기초해야 한다.

4. 최대의 칭찬과 관여

주지하디시피, 지난 9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대북 제재와 압박, 그리고 흡수통일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이에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라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다. 북핵은 빠르게 고도화되었고 어느덧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 문턱을 다가서고 있다. 이 사이에 한국은 미국 강경파들의 꽃놀이패로 전락했고, 한중 관계는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사드 대란을 자초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에서 허덕여왔다. 다행히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정부가 조기에 종식되면서 정권교체는 이뤄졌고 새로운 미래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희망찬 미래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실력을 갖출 때,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드라마의 반전을 모색할 수 있다. 물론 한반도 평화와 진짜안보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사안 자체의 어려움도 크지만, 국내외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혁명의 힘과 압도적인 국민들의 지지를 믿고 이 길로 나아가야 한다. 소통과 협치를 통해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인 합의, 그리고 긴밀한 한미공조를 추구하면서도 과감하고 창의적인 접근도 시도해야 한다.

당면 과제는 6월말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이다. 그런데 성공적인 개최는 결코 ‘미국의 범위’에 우리의 입장을 맞추면서 갈등과 이견을 최소화하는 것으로는 담보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이견을 솔직히 말하고 때로는 얼굴을 붉히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정상회담에 임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해서 문재인 정부에게 권고하고자 하는 한미정상회담 전략은 ‘최대의 칭찬과 관여’이다. 이는 트럼프가 지금까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나온 언행을 칭찬하면서 ‘최대의 관여’를 견인하고 그 결과로 나올 수 있는 업적을 칭송하는 접근을 의미한다. 트럼프가 북핵 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삼으면서 전임 정권이 실패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 강한 의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의 성공 가능성은 존재한다. 트럼프의 기질도 이러한 접근이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칭찬은 트럼프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래와 같은 성과 도출을 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첫째는 북한과의 대화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밝혀온 북한과의 대화의 조건은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중지, 그리고 비핵화 의지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의 조건으로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미국이 대화의 전제조건에 집착할수록 당면 과제인 북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중지는 더욱 난망해질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우선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북한의 6차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에 트럼프의 의견을 물으면서 그의 지도력을 칭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화를 바탕으로 한미 정상이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면서도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를 하지 않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이에 두 정상은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탐색적 대화에 나서기로 했다”는 합의 도출을 시도했으면 한다.

둘째, 북미 정상회담이다. 트럼프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의사를 지속적으로 피력해왔다는 점이다. 그는 특히 5월 1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만나는 게 적절하다면 나는 절대적으로, 영광스럽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부분의 정치인이라면 결코 이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나는 적절한 환경에선 그를 만나겠다고 말하는 것”라고도 덧붙였다. 트럼프가 기존 외교 문법에서 벗어나 있고 대북 발언도 오락가락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발언은 분명 주목할 가치가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북미 정상회담 의지를 가장 강력하게 피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환기시키면서 적극적인 지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사상 최초가 된다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김정은의 전략적 셈법을 바꿔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바로 미국 대통령이라고 강조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협상가’를 자처하는 트럼프의 협상 욕구를 자극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사가 있다는 점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최대의 칭찬과 관여’의 백미에 해당된다.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의지를 칭찬함으로써 최대의 관여라고 할 수 있는 북미 정상회담(혹은 남북미를 포함한 다자 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이게 성사될 경우에 한반도 문제 해결에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과도기적 목표의 공유이다. 분명 한반도 비핵화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궁극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혹은 북한의 비핵화를 강하게 요구할수록 그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역설적인 현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대북 협상의 중간 목표로 북핵 동결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유지하면서도 이를 위한 중간 단계로 북핵 동결을 거쳐야 할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핵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현재 20개 정도로 추산되는 북핵이 2020년경에는 50개 안팎으로 늘어날 수 있다.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도 시간 문제이다. 이는 북핵 동결 협상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선에 집착하다가 북핵 질주라는 최악의 결과에 직면하기보다는 북핵 동결이라는 차선을 달성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선을 도모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볼 때, 미국은 차선으로 북핵 동결을 검토할 수도 있다. 북한의 핵탄두 장착 ICBM 보유는 미국 외교의 최대 실패이자 낯선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자신의 임기 내에 이 수준까지 가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점에 주목해 한미 양국이 북핵 동결을 과도기적 목표로 삼자고 제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도 협의해야 한다. 즉, 북한의 핵동결 ‘조치’와 남북미중 4자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하자는 제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핵동결은 이른바 '3 No'를 의미하는 것으로, ‘양적 증강’을 차단하기 위한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및 불능화(No more), ‘질적 향상’을 차단할 목적으로 추가 핵실험 및 위성 발사를 포함한 탄도 로켓 발사 중단(No better), 그리고 핵무기 및 기술과 물질 해외 이전 중단 약속 유지(No export)이다. 평화협정 체결 시점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동결 감시단이 영변으로 복귀해 동결 상태 확인을 마친 직후로 상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평화협정 논의가 비핵화의 초점을 흐릴 수 있다”거나 “북핵 폐기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핵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협정에 비핵화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 평화협정에 명시되어야 할 비핵화 조항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북한의 핵 폐기 대상, 방식, 시한을 명시하는 것이다. 북한의 조속한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의사 재천명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한반도의 온전한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남한의 비핵화 공약 준수, 미국의 대북 소극적 안전보장 제공, 군사훈련에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 반입 금지, 북핵 폐기 완료시 미국의 핵우산 철수 등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핵 동결은 시급한 과제인 반면에 평화협정 협상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안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기본 협정(basic treaty)+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 방식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은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어온 여러 조약 체결 방식과 흡사한 것이다. ‘기본 협정’에는 상호 주권 존중,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식, 상호 불가침, 한반도 비핵화,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등 원칙적이고 조속히 합의 가능한 항목들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부속 합의서’에는 북방한계선(NLL), 유엔사와 주한미군, 군축 문제, 평화체제 관리기구 구성과 운용과 같은 까다롭고 긴 협상을 요하는 항목들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해법을 모색하면서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북핵 동결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 트럼프에게 큰 업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가 냉전의 고도(孤島)로 일컬어져온 만큼, 냉전보다도 못한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냉전 종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압도적인’ 의제로 삼아서 두 지도자가 의기투합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최우선 순위의 의제를 두고 긍정적인 케미가 형성되면, 사드, 방위비 분담금, 한미 FTA 등을 둘러싼 이견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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