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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설(베를린 선언) ― 2000. 3. 9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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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설(베를린 선언) ― 2000. 3. 9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문제

존경하는 피터 궤트겐스 총장,

존경하는 교수 및 내외 귀빈,

그리고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

나는 먼저 이 자리를 빌려 폐허와 분단을 딛고 일어서서 오늘의 번영과 통일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독일 국민에게 마음으로부터 경의와 축하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간직하면서 오늘 이 유서 깊은 베를린 자유대학의 교수 및 학생 여러분과 더불어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문제’라는 주제 아래 대화를 갖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우정어린 환영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는 베를린 자유대학과 이 대학 출신들이 지난 1948년 개교한 이래 동서독간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독일 통일을 앞장서 이끌어 온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이 대학을 찾았습니다. 분단국인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독일 통일에의 교훈을 배운다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과 한국 양국은 전쟁과 민족분단의 쓰라린 고통과 경험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여러분은 ‘라인강의 기적’을,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동안 아시아 지역을 휩쓴 경제적 위기를 국민과 정부의 헌신, 그리고 독일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협력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극복했습니다. 1997년말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는 이제 800억 달러에 도달했습니다. 1998년도 마이너스 5.8%였던 경제성장률이 작년에는 10.2%로 상승했습니다. 물가·금리·외환·증시 등이 모두 전례없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실업률도 금년 내에 4%까지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과 독일은 이러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킨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한국 국민은 비록 독일과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유사성 때문에 독일과 독일 국민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수 및 학생 여러분!

세계는 이제 대립과 갈등의 20세기를 뒤로 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의 뉴밀레니엄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난 20세기말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됨으로써 50여년간 지속되어 온 냉전구조가 해체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이념을 고수해 온 중국·베트남도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여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이나 베트남은 우리에게 더 이상 위험한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좋은 친구이자 가장 유망한 경제협력의 상대입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도 이러한 세계사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채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북한의 완고한 폐쇄정책 때문입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대립과 갈등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우리 한국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를 위해서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이 먼저 성공적으로 이룩한 동서독 관계와 통일의 경험은 우리가 대북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일로부터 얻은 교훈은 첫째, 독일의 통일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발전시켜 온 서독 국민의 저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동서독의 대결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경제의 대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둘째, 서독은 ‘접촉을 통한 변화’로 요약되는 동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동서독간의 상호공존과 긴장완화의 틀을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동독 주민들의 서독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해소하고, 이데올로기적 반목을 완화시켰습니다.

셋째, 서독은 진지하고 성의있는 노력으로 통일독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전에 불식시켰으며, 놀랍게도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이해와 협력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적극적이고 성공적인 외교를 전개했습니다.

넷째, 서독 정부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과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내심과 성의를 가지고 동서독간의 화해와 교류·협력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서독의 대동독 정책은 우리 한국의 햇볕정책 추진에 매우 귀중한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수십년 동안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단계적 통일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나의 가장 존경하는 친구인 빌리 브란트 전 총리, 폰 바이체커 전 대통령, 그리고 겐셔 전 외무장관 같은 지도자들과도 여러 차례 귀중한 의견을 교환한 바 있습니다.

서독의 동독에 대한 정책, 통일 이후의 상황 모두가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한 교훈이 되어 왔습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교훈은 독일 통일 이후에 동서독간의 경제적 격차의 해소와 특히 심리적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가를 심각하게 배운 것입니다.

우리는 독일 통일을 보고 한없는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충격도 컸습니다. 그것은 첫째, 엄청난 자금의 소요입니다. 2천억 마르크면 된다던 통일비용이 10배나 들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양독간의 경제적 격차의 해소는 아직도 남아 있는 숙제라고 합니다. 둘째, 구동서독인 사이의 심리적 갈등이 아직도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도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독은 경제규모 면에서 보더라도 한국보다 훨씬 더 크고 부유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동독과 전쟁을 한 일도 없고, 통일 전에 많은 교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통일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경제는 북한을 떠안을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겪었고 극도의 무장대립 속에 있습니다. 동독 국민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서 만개했던 민주주의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은 자유에 대한 어떠한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의 고립으로 북한 밖의 외부세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그대로 둔 채 통일을 서두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은 당장 통일을 추구하기보다는 한반도에 아직도 상존하고 있는 상호위협을 해소하고 남북한이 화해·협력하면서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통일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나는 1995년에 좥한반도 3단계 통일론좦을 저술한 바 있습니다. 1단계는 일종의 독립국가연합의 단계이고, 2단계는 연방체제 아래 남북이 광범위한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것이요, 3단계는 완전통일의 단계인 것입니다. 나의 이러한 통일방식은 앞서 말한 빌리 브란트 전 총리 등 독일의 지도자들로부터도 많은 찬성과 격려를 받은 바 있습니다.

존경하는 자유대학 교수 및 학생 여러분!

나는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아직까지도 개방과 변화를 망설이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북한의 무력도발을 절대 용납치 않는다. 둘째, 우리도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이 화해·협력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햇볕정책의 핵심이며 냉전종식을 위한 주장입니다. 우리는 확고한 안보를 유지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화와 화해·협력이 목적입니다.

이와 같은 햇볕정책의 기조 위에서 우리는 북한에게 세 가지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북한의 안전을 보장한다. 둘째, 북한의 경제회복을 돕는다. 셋째, 북한의 국제적 진출에 협력한다.”

그 대신 북한도 세 가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첫째, 대남 무력도발을 절대 포기해야 한다. 둘째, 핵무기 포기에 대한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 셋째,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야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는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고 하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포괄적 접근방안입니다. 우리는 이를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 속에 북한에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제안은 북한에게도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는 윈윈(WIN-WIN)정책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독일을 포함해 전세계가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인 중국·러시아·베트남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지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불안요인을 크게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과의 전쟁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북한을 도와 주고 싶습니다. 저 역시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의 참상을 TV화면으로 보면서 눈물을 금치 못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북한이 피폐한 경제를 회복하여 굶주린 북한 동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주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을 우리는 열망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거부로 비록 정부간의 대화는 하지 못하고 있지만,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은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제적인 대북한 교류나 협력을 환영하며 필요한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로 경제·문화·체육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남북간 교류·협력이 어느 정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미 18만명이 넘는 우리 국민이 북한에 있는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습니다. 남북간의 교역도 작년에는 사상 최고인 3억 4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100개가 넘는 남한의 중소기업이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투자도 시작되거나 협상중입니다. 금년에는 서해공단의 건설, 전자제품공장과 자동차 조립공장 등이 남한의 대기업의 투자에 의해서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문화·스포츠의 교류도 활발합니다.

한편 국제적으로는 작년에 여러분이 계신 이곳 베를린에서 미국과 북한이 회담을 갖고 관계개선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머지않아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일본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도 북한과의 국교 개시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든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어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하고 자신을 위한 경제개방에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교수 및 학생 여러분!

나는 오늘 뜻깊은 베를린 자유대학을 방문한 이 자리를 빌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와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이루고자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한간에는 정·경 분리원칙에 의한 민간경협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제협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도로·항만·철도·전력·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되어야 합니다. 또 정부 당국에 의한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 방지협정 등 민간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은 단순한 식량지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료, 농기구 개량, 관개시설 개선 등 근본적인 농업구조 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과 안정된 투자환경 조성, 그리고 농업구조 개혁은 민간 경협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 당국간의 협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 당국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둘째, 현단계에서 우리의 당면 목표는 통일보다는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입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정신으로 힘이 닿는 대로 북한을 도와 주려고 합니다. 북한은 우리의 참뜻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우리의 화해와 협력 제안에 적극 호응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북한은 무엇보다도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적극 응해야 합니다. 노령으로 계속 세상을 뜨고 있는 이산가족의 상봉을 더 이상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넷째, 이러한 모든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남북한 당국간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나는 이미 2년 전 대통령 취임사에서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위해 특사를 교환할 것을 제의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특사 교환 제의를 수락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 문제는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국자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정책을 성의와 인내심을 가지고 일관되게 추진할 것입니다. 독일을 위시한 국제사회도 한반도에서 냉전을 종식시키고 남북한간 화해와 협력이 조속한 시일 내에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더욱 더 적극적인 성원과 지지를 계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 및 학생 여러분!

한국에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는 서로 연민의 정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독일과 우리 대한민국은 민족의 분단이라는 크나큰 아픔을 같이 경험한 인간적인 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한국 국민은 이러한 아픔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민족 통일의 위업을 먼저 이룩한 독일 국민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표시하며, 여러분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우고자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군사 독재자의 억압 속에 신음할 때 독일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우리를 성원해 주었습니다. 나는 독재자와 싸우다 다섯 번의 죽음의 고비와 6년의 감옥살이, 30년의 망명·연금·감시하의 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독일 국민과 독일의 지도자들은 내 일과 같이 나와 한국의 민주인사들을 적극 지원해 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내 깊은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한국의 민주화는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한반도의 통일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여러분의 성원은 계속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리 한국민은 언제까지나 가장 충실하고 우정이 넘친 친구로서 독일 국민과 베를린 자유대학 여러분과 함께 새천년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